2010. 4. 12. 08:33ㆍ대간 및 정맥/낙동정맥
낙동 제4구간 석개재~답운치
1. 일자 : 2010. 04. 10(토)
2. 날씨 : 맑음
3. 산행인원 : 오선산악회 낙동정맥팀
4. 산행구간 : 석개재 ~ 답운치
석개재 - 용인등봉- 삿갓봉 - 한나무재 - 진조산 - 답운치
5. 산행거리 : 24km/ 석개재 - 2.7 - 묘봉북동봉 - 1.2 - 용인등봉 - 3.6 - 삿갓봉 - 1 - 1,098봉 - 3 - 1,136봉 - 5.4 - 934.5봉 - 2 - 한나무재 - 1 - 진조산 - 4.1 - 답운치
6 . 산행시간 : 07시간 58분/ 석개재(09:32) - 용인등봉(10:46) - 삿갓봉(12:06) - 백병산갈림길(13:16) - 934봉(15:01) - 한나무재15:43) - 진조산(16:15) - 답운치(17:30)
7. 산행기록
낙동정맥을 시작하면서 처음으로 창원에서 버스를 타고 가는 날이다. 어제밤 영월에서 늦게 도착하여 새벽3시반에 일어날려니 눈꺼풀이 무겁다. 그래도 가야할 시간이기에 벌떡 일어나 산행준비를 마치고 남양초등학교 앞에서 차를타고 4시반에 출발하여 모자라는 잠도 보충하고 오랜만에 만난 짝지와 얘기도 하면서 석개재에 도착하니 9시 반이다.
석개재는 석포면의 경계란 의미로 사용되었다고 하는데, 석개(石開)는 글자 그대로 "돌문이 열린다"는 뜻으로 돌이 많은 산으로 사방이 막혀 있는 石浦에서 이 돌문이 열리면 이 곳에 1만 가구 이상 살게 될 것이라는 전설이 내려오고있는 곳이다. 전설은 전설일 뿐인가 석개재에 길이 뚧혀도 현재 인구는 2천여명 남짓이란다.
산행준비를 마치고 산행을 시작한다. 들머리에 임도와 능선을 오르는 두갈래 길이 있고 리본은 능선을 오르는 길에 더 많이 걸려있다. 선답자들의 산행기에는 임도를 택해서 산행을 시작한 분들이 많은것 같은데 오선산악회 산꾼들은 임도를 버리고 모두들 능선길로 들어선다. 가파른 오름길을 오르는데 앙증맞은 꽃들이 낙엽속에 피어있다. 무슨꽃일까 궁금했는데 노루귀란다. 건너편 북사면엔 아직도 잔설이 많은데 이렇게 작은꽃이 봄마중을 나와 반기니 산객의 발걸음은 가볍기만 하다.
▷ 산행시작전 석개재에서(경상도땅)
▷ 석개재에서(강원도땅)
▷ 노루귀(석개재에서 산행을 시작하면서 능선오름길에 수줍게 피어있다)
낙엽속에 녹지않은 얼음길과 산죽을 헤치며 한시간쯤 오르니 묘봉과 용인등봉의 갈림길인 묘봉북동봉에 도착한다. 묘봉을 올라보고싶지만 갈길이 멀어 묘봉의 유래를 생각하면서 용인등봉으로 발길을 재축한다. 옛날에 묘봉아래 골짜기에 고양이가 많이 살았고, 묘봉에고양이 형상의 바위가 있어 猫峯으로 불렀다고 한다. 묘봉을 뒤로하고 20여분을 오르니 어진용이 살았다는 용인등봉에 도착한다. 여느때처럼 정상석이 있으리라 상상하면서 이리저리 둘러봐도 나무에 걸린 정상안내판 말고는 아무것도 없다(석개재에서 답운치 까지는 정상석이 없었다) 용인등봉에서 사진을 찍고 삿갓봉으로 향한다.
▷ 묘봉갈림길에서 용인등봉을 오르면서
▷ 용인등봉에서
▷ 용인등봉
삿갓봉을 향해 발길을 재촉하는데 마당님의 발걸음이 무겁다. 엊저녁 잠을 못자서인가? 아님 오후반이기 때문인가? 암튼 한번 짝지는 영원한 짝지인지라. 발걸음을 천천히 해본다. 함께가던 분들은 모두 고개넘어 갔는지 보이지 않고 뒤돌아보니 마당은 홍마와 이런저런 얘기를 하면서 내리막길을 걸어내려온다. 홍마가 산죽을 배경으로 이쁘게 사진을 찍어준다. 용인등봉에서 한시간쯤 걸으니 삿갓재에 도착한다. 삿갓재를 지나고 삿갓봉의 옆구리를 통과한다. 삿갓봉은 옛날 큰 홍수로 정상을 삿갓 모양 만큼 남겨 놓고 인근 모두가 물에 잠겼다 하여 삿갓봉이라 불렀단다. 한국판 노아의 방주인가? 아무튼 삿갓봉은 강원도와 경상북도의 경계로 삿갓봉을 지나면서 강원도땅을 벗어나게 되는 것이다. 삿갓봉을 지나 임도 삼거리로 가는길의 북사면에 있는 임도엔 아직도 쌓인눈이 많고 눈이녹아 내리는 물이 작은 개울을 만들어 흘러내리고 있다. 임도삼거리를 지나 임도와 능선길이 만나는 곳에서 먼저간 산꾼님들이 점심식사를 하고 있다.
▷ 산죽밭을 지나면서
▷ 삿갓재
▷ 삿갓봉에서 임도 삼거리사이 북사면에 있는 임도에 눈이녹아내리고 있다
▷ 임도삼거리 표지판(처음이자 마지막 간판이다)
함께 점심식사를 하고 오늘 산행길에서 가장높은 1,138봉우리를 향해 오름길을 오른다. 30여분을 오르니 백병산과 오미산의 갈림길이 나온다 준.희란 분이 친절하게 안내표지를 나무에 걸어 놓았다. 얼굴은 모르지만 곳곳에 안내표지를 붙여준 것에 감사하며 사진한장 남기고 갈길을 재촉한다.
▷ 백병산 오미산 갈림길(봉화군 경계를 벗어나 온전히 울진군에 진입했다)
백병산 갈림길에서 1,138고지를 지나고 낙엽을 밟으며 산죽을 헤치고 산길을 한시간반쯤 걸어내려가니 임도에 도착한다. 산행기엔 금강송과 함께하는 정맥길이라는데 아직 금강송이 보이지 않는다. 산불 흔적이 있는데 산 불 때문인가? 소나무는 산불에 매우 약하니.....
▷ 1136봉에서 내려와 맞이한 임도에서
▷ 1136봉에서 내려와 맞이한 임도에서
임도를 지나고 934봉에 도착한다. 여기도 준.희님의 흔적이 있다. 934봉에서 한나무재로 향하는 우측아래에 작은마을이 있는데 마을 이름이 승부리이다. 옛날 전쟁 때 승부가 이곳에서 결정되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며, 현재 10여 가구가 살고 있단다.
▷ 934봉에서
▷ 934봉에서 한나무재로 가는 내리막길 금강송은 어디가고 수북히 쌓인
낙엽이 산객의 발길을 어루만져준다
934봉에서 한나무재로 향하는 능선에도 금강송은 보이지 않는다. 다만 군데 군데 불에탄 흔적이 있는 소나무의 밑둥만 보일 뿐이다. 산불로 인해 금강송이 모두 타버리고 산불에 적응력이 강한 활엽수로 바뀌었나보다. 활엽수의 수령으로 보아 산불이 난지도 수십년은 넘은 것 으로 추정되기도 한다.
석개재와 답운치 사이에는 정맥 횡단도로가 2개 있는데 첫번째 도로가 한나무재 이다. 한나무재는 고대 부족국가시대의 실직국 마지막 왕인 안일왕이 피난 중에 피곤하고 목이 말라 이 고개에 있는 자작나무 물을 받아 먹었다하여 한나무재라는 이름이 붙었단다. 우리도 목이마르고 피곤하여 한나무재에서 물과 간식을 먹으면서 휴식을 취한다.
▷ 한나무재에서
진조산을 오르는데 간식과 휴식덕분인지 오르막길이 힘들진 않다. 산불의 흔적이 사라진 곳엔 뛰엄 뛰엄 금강송의 흔적이 보인다. 20여분 남짓 오를니 진조산 갈림길이다. 정맥길은 진조산 정상에서 살짝 비껴나 있다. 갈림길에 베낭을 벗어놓고 진조산을 오르니 묘지가 2기가 있다. 정상석을 기대했는데 여기도 없다. 다만 준.희님의 흔적과 함께 여기서부터는 본격적으로 금강송을 기대해도 좋을 안내판이 나무에 걸려있을 뿐이다. 진조산에서 오늘 산행의 노고를 풀고 사진을 찍는다.
▷ 진조산에서 산행의 노고를 풀어본다
▷ 진조산
▷ 진조산에서(불영계곡이 시작되는 지점인가 보다)
진조산 에서 통고산을 바라보니 무척 높게 보인다. 오늘 저 산을 오르라면 못오를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이제 기운이 많이 소진되고 지쳤나 보다. 산행 들머리에서 높은산을 보면 산행에대한 욕구가 불끈 솟을 것인데.... 이것이 사람의 마음인가 보다. 진조산을 내려오면서 금강송이 많이 보이기 시작한다. 소나무가 많은 길은 얼음이 없어 미끄럽지 않고 산죽이나 잡목이 자라지 않아 산행길이 한결 쉽다. 근사한 소나무를 배경으로 사진도 찍으면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며 두번째 정맥 횡단도로인 굴전고개를 지나서 오늘의 산행날머리인 답운치에 도착한다. 답운치는고개가 높아 구름을 밟는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란다. 해발고도가 619m이므로 그다지 높은 고개가 아닌데도 좋은 이름을 얻었구나 생각하며 산행을 마무리하고 귀가중에 봉화에서 저녁식사를 하고 집에 도착하니 새벽 0시30분이다. 이렇게 하여 낙동정맥의 4구간을 마무리한다.
▷ 진조산에서 내리막길에(금강송이 드디어 나타나기 시작했다)
▷ 굴전고개에서
▷ 오늘의 산행종착지 답운치(바람이 차다)
▷ 산행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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